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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1학기를 마치며

Zeromm 2023. 6. 23. 12:29

기숙사에 짐을 빼러 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즐비할 때, 난 슬슬 학기 말이 코앞에 닥쳤음을 체감한다. 저번주 금요일 저녁부터 이 좁은 기숙사 앞으로 매너 없이 짐 실을 차들이 들어차면서 왠지 모를 짜증과 벌써 시간이 이리 지났다는 허탈감도 든다. 기숙사 창문 밖으로 짐 싣는 소리와 가족 간의 왁자지껄하고도 뭉쳐 버린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그들처럼 집에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여기에 남아 있는 게 조금 아쉽기만 하다.

 

저번 주말엔 방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아직 통계학 실습 발표와 실습 시험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준비하느라 그랬다. 그래서 면도도 안 하고 지내다가, 점심엔 가볍게 닭가슴살 데워서 먹기로 했다. 근데, 웬걸? 1층에 있는 전자레인지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기를 만나버렸다. 그것도 부녀가 함께 짐을 옮기고 있는 상태인 듯 보였다. 서로를 확인하고는 난 멋쩍은 인사를 보내고 찌그러져 있었다. 내 이미지를 구긴 느낌이기도 하고, 원래는 있어선 안 될 외부인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아! 이래서 한 기숙사에 남녀 구분을 해놔야 한다. 이게 뭐람... 그래도 그 친구는 되게 명량한 아이라 한번 더 인사를 따로 하고 가긴 했다. 아무튼, 이런 걸 보면 학기가 이미 끝났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학기가 끝날 때 즈음엔, 이번 학기에 대한 기억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된다. 내가 과연 잘 지냈는지, 문제는 없었는지 말이다. 여기에 담긴 힘든 얘기가 많았지만, 일단 학업에 있어서는 솔직히 그리 좋은 학기를 보낸 것 같진 않다. 그 시작은 분명 전공과목을 배우게 되면서, 모든 동기들은 같은 공간에 모아 넣는 것이었으리라. 그 작으면서도 큰 강의실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집중을 못할 요인들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상대로 주입식 교육을 진행하시는 교수님들, 아직까지는 성적 걱정이 없어 산만한 분위기, 그리고 수업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는 나 자신. 이게 너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수업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다니 인정하기 싫었지만, 시험공부를 할 때마다 잘 느껴져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서 시험기간마다 여러 방법을 도입했다. 머리 회전이 빠른 친구와 함께 시험 전날 족보를 맞춰보며 잘못 안 부분이 있는지 따져보기도 하고, 학업 습득력을 높이기 위해 아침에 찬물 샤워도 해봤다. 마침 유기화학 과목을 배우면서, 도파민에 대해 배웠는데, 때마침 Youtube에서 찬물 샤워가 도파민을 적절한 수준으로 분비해 줄 수 있다는 걸 접했다. 처음엔 진짜 고통스러웠다. 턱이 막 떨리고, 헛웃음도 나오고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한 3일 정도 했는데, 뭔가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뇌가 빨리 깨는 느낌이랄까. 물론 늘 찬물로 씻은 건 아니다. 먼저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고 그다음에 씻겨낼 때, 찬물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매일 하다 보면 만성이 될까 봐 딱 시험 보기 3일에서 5일 정도 전부터만 했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도파민 분비의 메커니즘이 생존과 관련된 유전자를 건드는 '호메르시스' 작용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매일 하다 보면, 춥다고 느끼기보다는 시원하다고 느끼는 수준으로 넘어가는데, 암만 봐도 그즈음 가면 도움이 딱히 될 것 같진 않다. 가끔씩 필요할 때 하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또한, 수업을 늘 날려 들은 것은 아니다. 적당한 배경지식이 있을때, 그리고 흥미가 마구마구 드는 수업일 때는 뇌에서 소름이 쫙 끼치면서 수업을 들은 적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 유기화학에서 배웠던 약품들이 분자세포생물학 수업에서 분자 단위로 작동하는 과정을 배울 때 자주 이런 걸 느꼈던 것 같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자극이 들어오고 기존에 있던 뉴런이 연결되는 기분. 핵심은 '적절한 배경지식'이다. 모르는 게 많아질수록 수업을 듣기 힘들어지고, 그럼 아는 게 더욱더 없어진다. 악순환인 셈이다. 이걸 적어도 앞으로의 학기에서 많이 적용시킬 수 있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다. 내 지적 체계를 더 확장시키는 것, 그게 내가 이 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 느꼈다.

 

그래서 이번 방학은 조금 바빠져야 할 것 같다. 미친 듯이 책을 읽고, 할 수 있으면 다음 학기 공부를 예습해야 할 것 같다. 저번에 썼던 유비무환글처럼 선제적으로 행동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선배님들은 이번 방학까지 열심히 놀고, 다음학기부터 죽을 둥 살 둥으로 공부하라고 말씀해 주셨긴 한데, 이건 내 취향이 아니다. 내가 정말 욕심이 있다면 방학하고 나고 벌써 며칠은 된 지금, 움직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방학의 내 삶의 궤적을 이 블로그에서 잘 기록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공부할 건 산더미니깐... 피하지 말고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