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BOOK

[페스트] 부정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희망

Zeromm 2023. 7. 9. 23:59
매번 볼때마다 깔끔하다고 느끼는 민음사 표지

 

수업에서 느낀 흥미가 독서로

1학기 고전 명저 수업은 정말 재미있었다. 물론 동양 고전은 조금 어렵고 따분하다고 느꼈지만, 서양 고전은 되게 재미있게 수업했던 것 같다. 그때, 교수님께서 4가지 작품을 다뤄주셨는데, ‘아리스토텔레스 행복론’과 ‘오만과 편견’, ‘데미안’과 ‘페스트’가 그것이다. 특히 데미안은 집에 책이 있었기 때문에 수업 예습복습 겸 읽어봤는데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심화 부분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래서 마지막 작품인 페스트도 한번 사서 읽어보려고 했지만, 그 당시 너무 스스로가 시간이 부족하게 생활해 왔기 때문에 못 읽어보고 시험을 쳤었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도 정말 흥미로웠기 때문에 꼭 방학 때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늘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줄거리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어느 날 오랑 시에서 갑자기 쥐들이 길에서 객사하는 것을 보고는 찝찝함을 느낀다. 그 이후로 더 많은 쥐가 길에서 죽어가고, 마침내 그것을 처리하는 아파트 수위를 비롯한 시민들이 ‘페스트’라는 전염병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그 심각성이 대두된다. 그리고 마침내 오랑 시의 문을 걸어 잠그면서 1부가 끝이 난다. 2부에서는 장 타루의 제안으로 보건대를 조직하는 리유의 모습이 그려냈고, 3부에서는 극한으로 치닫는 오랑 시의 모습을 간략하고 이를 충격적으로 묘사한다. 4부에서는 나름의 절정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오통 판사 아들의 죽음이 그려진다. 5부에서는 페스트의 확산세가 어느 정도 잡히지만 끝내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죽은 타루와 해방의 기쁨의 도가니인 오랑 시, 그리고 페스트균은 어디에든지 있다는 암시와 함께 마무리된다.
 

감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인물들, 리유와 그랑

수업 시간, 교수님께서는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로 부조리, 반항, 사랑 세 가지를 제시하셨었다. 그중에 부조리와 반항은 정말 이 책의 전부라 봐도 무방하다. 의사 리유는 페스트가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정말 마지막까지도 갖지 않은 채 묵묵히 전염을 막는데 헌신한다.

그래서 그는 서기 그랑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한다. 외모는 볼품없고 말단 서기인 그이지만 페스트가 터지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나가기 때문이다. 수업에 다뤄주지 않았던 흥미로운 점은 그랑이 작가가 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놀라운 문체를 가져 청중들이 일어나 박수를 칠만큼! 아주 야무진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너무 완벽주의 성격을 가져 첫 문장을 쓰는 데만 한세월이었다. 그 문장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잔느임을 나중에 알게 되고 서기 그랑의 과거도 알게 된다. (과로와 가난으로 자신의 아내 잔느를 잃고 승진도 하지 못함) 그 이후 페스트에 걸려 리유에게 자신의 원고에서 괜찮은 문장 하나만 읽고 불구덩이에 던져달라는 얘기를 한다. 그렇게 목숨을 잃는 줄만 알았던 그는 그 문장의 힘 때문인지 페스트를 극복해 내고 마지막엔 잔느에게 다시 다가가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 부분은 정말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잊지 않은 덕택을 보는 느낌이었다.

수업에서 환영받지 못한 인물, 코타르

또한, 그랑과 같은 건물에 사는 '코타르'라는 인물도 참 매력이 있다. 원래 살인을 하고 감옥으로 보내져야 할 인물이지만 페스트로 인해 혼란함을 틈타 거리를 활보하고 시민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인물이다. 페스트의 수혜자라고나 해야 할까? 5부에서 페스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직접 리유에게 찾아와 제발 부정적인 소식을 들려달라고 애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의 말로 역시 참 지저분하다. 오랑 시의 문이 개방되고 그는 대낮에 총격전을 벌이다가 경찰에게 붙잡힌다. 이런 것을 보면 왜 수업시간에 이 인물을 안 다뤘는지 알 것 같다.

그의 가엾은 어린 아이는 죄가 없다, 오통 판사와 그의 아들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자, 엄청난 흡입력을 가진 파트는 단언컨대 오통 판사 아들의 죽음이다. 아들이 페스트에 걸리자 오통 판사가 리유를 부르고, 리유는 곧장 가족들은 격리하고 아들을 병원에 보낸다. 리유가 경과를 지켜보다 도저히 살리긴 힘들 것 같아 마지막 수단으로 개발 중이었던 혈청을 이 아이에게 주입한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 아이는 죽는 그 순간까지 고통스럽게 사지를 비틀고, 온몸을 녹여가며 발악하고 비명을 질러댄다. 그리고 그 비명에 맞춰 같은 공간의 다른 환자들도 비슷한 비명을 지르고 급기야 다른 병동 환자들의 비명도 들려오는, 참으로 그로테스크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러고 마지막에 리유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도 충격적이다. 이런 상황을 보는 보건대 사람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이후 파눌루 신부 역시 자신의 신앙으로 죄 없는 아이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신의 뜻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궤변으로 아이의 죽음 역시도 신의 의미라는 말을 내뱉고는 곧 병에 걸려버리고, 페스트인지도 아닌지도 모른 체 의심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것을 보면 카뮈는 종교적인 귀의 역시 부조리에 맞서는 좋은 태도임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약자 편에서 싸울 수 있는 용기, 장 타루

끝으로 이 책이 내게 남겨준 가르침은 장 타루의 이념과도 같다. ‘패배자의 편에 서서 함께 싸워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그 패배자들은 좋지 못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렇게 올바른 삶을 살아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누구라도 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와 의무가 있으니까,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혼자 동떨어져 살아가는 것은 인간일 수 없을 테니 그의 신념은 더욱 와닿는 것 같다. 나도 앞으로 약자들의 편에서 타루처럼 올바른 사회가 재건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7.21. 기록
추신
벌써 1년이나 된 독후감이네.  책이 꽤 두꺼웠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었다. 카뮈만의 독특한 문체와 부조리라는 주제의식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한다.앞으로 리유처럼 부조리한 현실을 자주 마주하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포기하지 말고 약자 편에서 함께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