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상자/글

강한 자만이 서울에 갈 수 있다

Zeromm 2023. 7. 30. 13:07

7월 27일. 어머니와 함께 안과 검진을 받으러 종각역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1호선을 타고 쭉 내리 달리는 길. 어머니와 함께 가는 길이었기에 따로 음향 기기는 챙기지 않았다. 여유가 되면 책이나 읽으면서 가고 싶어서 읽고 있던 책도 챙겼지만 읽진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읽기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둘이 앉을자리는 있었다. 그래서 가는 동안엔 종각역 근처 알라딘에서 살 책이나 서칭 하면서 갔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신기하게 밤에 가본적은 없네 (사진출처 : 내 손안에 서울)

 

귀를 막을 수 없으니 다 들린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노는 소리, 재잘대는 소리, 예수 믿으라고 지하철에서 랩하는 노인, 그걸 강요하는 그 노인.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게 정말 뭣 같다. 시끄러운 소리가 더운 날씨의 불쾌함을 한층 더했다.
심지어는 불법 노상인도 있다. 하나만 사주면 도움이 될 거라는 소리를 반복해가며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려고 한다. 저런 것도 일방적으로 동정을 구하는 몸짓이겠지. 제 딴에는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만, 여긴 전철 안. 절대 불법적인 호객 행위를 해선 안되는 공간이다.
이윽고 방송안내가 나온다. 전철 내 불법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즉시 하차해주시길 바란다는 것. 우연의 일치인지, 안내가 나올 즈음에는 조용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 다들 사람 많은 전철에서 이 난리일까. 가슴속으로 우리 국민들의 시민 의식만 애꿎게 탓할 뿐이었다.
 

코를 찌르는 냄새와 정체불명의 음식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책도 한아름 사고 근처 식당에서 밥도 먹었다. 보쌈거리라고 해서 종각 3가역 근처에 식당가가 즐비한데, 그중 한 곳에서 먹었다. 날이 가뜩이나 더운데 계속 찌고 튀겨대는 골목 식당들 사이를 거닐고 다니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뜨거운 식당 골목들 사이로 생각해 둔 식당에 들어가니 시원하니 살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젠 후각을 찌르는 묵직한 냄새가 문제였다. 이게 돼지 잡고 난 냄새인지, 어패류 썩는 냄새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마녀가 커다란 솥에 마법의 약을 만드는 듯한, 이상하게 기분이 나쁜 공간에서 우린 점심을 먹었다.
다행히 점심에 먹은 것은 맛있었다. 김치가 좀 쉰 느낌이었는데 그것빼고는. 수육도 맛있었고 특이하게 낙지를 줬는데 쫄깃쫄깃하니 맛있었다. 걱정한 것보다는 맛있어서 기분이 한결 나았다. 그러나,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조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낮인데 소주부터 까는 중장년층 이상의 테이블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편하게 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어머니는 얼른 나가자고 재촉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사람들 속 잠에 들어버린 나의 어머니

코와 귀가 지저분하게 더럽혀진 기분이었다. 마치 테러당한 느낌이었달까. 식당을 나오니 더 더워져서 짜증이 막 밀려왔다. 짐까지 있으니 얼른 집가서 씻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어머니께서 옆에서 뭐라 얘기를 하셔도 건성 대답하고, 그냥 만사가 귀찮았다.
그렇게 어거지로 전철에 탑승하고 나서, 자리가 나서 같이 앉았다. 나는 폰에 저장해 둔 골학 용어 파일 들쳐가면서 외웠고, 어머니는 옆에서 도와주셨다. 그러다 어머니께서는 피곤하셨는지 짐을 무릎 위에 올리시고는 엎드려 주무시기 시작했다. 외우다가 살짝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 옆에 사람도 있으니까 조금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을 접고 말았다. 내 쪽으로 고개를 향하며 주무시고 계셨는데, 엎드린 팔에 볼살이 밀려 계셨다. 그리고 세상 불편한 자세로, 그러나 누가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드신 모습에 나는 오늘 반나절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낸 건가 싶었다.
내가 이렇게 감각이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오늘 반나절동안 경험한만큼, 그녀도 쉽지 않은 하루였을 것이다.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늘 곤두섰던 신경을 잠시나마 꺼두고 잘 수 있는 이 순간. 나는 그녀가 예전처럼 어린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모습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된 내가 그녀를 반대로 보호해야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고된 서울길

인천 집에 도착한 나는 빠르게 짐을 풀었다. 그리고 집에 있던 아버지와 조금의 수다를 떨며 집수리를 도왔다. 지어진지 거의 20년은 더 된 허름한 빌라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 집이 난 마음에 들었다. 너무나 복잡한 서울의 낮은 너무나 어지러웠다. 그것에 비하면 똑같이 덥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우리 집이 좋았다. 우리 어머니께서 긴 시간의 노동의 결정체로 마련한 우리 집. 나는 그녀와 그녀 아버지의 뜻을 받아 앞으로도 짭짤한 이 땅에 계속 살아가고 싶다. 우리 가족에겐 서울은 너무 힘든 곳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