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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타짜1] 고니가 기차에서 떨어졌어도 살아남은 이유

한국 영화 중에는 여러 번 명장면이 회자되면서, 각종 미디어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사례가 더러 있습니다. 그중,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해 명장면이 쏟아지는 영화가 있죠. 바로 타짜 1입니다. 

화질구지가 된 포스터. 출처는 나무위키

2006년에 나온 이 작품을 저는 19년도 고3시절 수능도 마치고 다들 심심할 때 학교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되게 재밌게 보기도 했고, 마침 예능에서도 관련 명대사들을 패러디를 자주하고 했어서 강한 인상을 남겼죠. SNS 짤로도 많이 돌아다녀서 틈틈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최근 동기들과 갔던 여행에서 우연하게 튼 TV 방송으로 타짜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여행 두번 연속으로요! 두 번 모두 재미있게 봤고, 심지어는 여운까지 남더라고요. 여러 번 보니까 놓친 떡밥도 보이고, 여러모로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줄거리

대학 진학은 고사하고, 가구공장을 다니며 가난한 삶을 이어가는 고니(조승우). 그에게는 이 삶을 청산해 줄 수단으로 화투방을 전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박무성(김상호)가 벌인 화투판에서 제대로 누나의 돈을 잃고, 돌아갈 곳 마저 잃게 된다. 그렇게 '갈 데까지 간 놈'으로 살던 어느 날, 고니는 한 도박장에서 화투를 아트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타짜, 평경장(백윤식)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평경장의 가르침을 받아, 잃었던 누나 돈을 다시 도박으로 모은다. 그리고 평경장은 전의 약속처럼 이젠 화투를 그만하려는 말을 하는데..

 

감상 (스포 있습니다!)

이미 연출부터 남다랐던 타짜 1

영화 자체의 연출은 되게 독특합니다. 정마담(김혜수)이 누군가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 고니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되죠. 그래서 고니의 도박 일생이 그려지면서, 정마담의 내레이션이 중간중간 곁들여지죠. 실은 조금 고전적인 기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찾아보긴 힘드니까요. 그렇지만 정마담이 담배를 피우며 회상하는 씬은 영화 끝자락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고니의 행방에 대해서 추적하는 경찰에게 인터뷰를 하고 있던 것이 연결되니까요.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 낸 것인지, 참 깔끔한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

고니와 정마담, 평경장을 제외하고도, 이 영화에는 주옥같은 인물들이 많습니다. 고니와 파트너를 이뤘던 고광렬(유해진)의 미친 입담과 남다른 중간 보스의 모습을 보여준 곽철용(김응수)이 그것이죠. 고광렬은 고니만큼 스토리 진행에 커다란 동력을 주는 역할은 아니었습니다만, 고니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지요. 스승인 평경장이 죽고, 한껏 시니컬해진 고니와 함께 다니면서 침체될 수 있는 영화 분위기를 환기하죠. 마치 일희일비하는 도박판처럼. 희로애락의 인생사를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유해진의 입담은 정말 영화와 잘 어울립니다.

돈에 미쳐있던 고니가 성격을 바꾸는 데에도 영향을 주죠. 마지막 아귀(김윤석)와의 대결을 앞두고, 그저 돈벌이 수단이었던 도박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고광렬이었습니다. 아귀에게 한쪽 팔을 내어주고 위태로운 상황이 된 순간에 그의 도박이 한껏 무거워진 것이죠. 그래서, 아귀와의 대결에서도 결국 승리했을 때, 돈보다는 고광렬을 구하는 데 몸을 움직입니다. 도박판에서 "영원한 친구도, 원수도 없다"는 말이 있어도 고광렬은 해당하지 않았나 봅니다.

곽철용은 미친 신스틸러이었습니다. 작중에는 아귀에게로 닿는 여정에 다리를 놓는 단계였다고 할까요? 그래서 영화의 전반부 중반부는 오직 곽철용과 고니만을 비추고 있습니다. 곽철용은 꽤나 한 성깔 하는 두목으로 그려지는데, 오히려 이런 이미지에 주옥같은 명대사를 개그맨들이 애용함으로써 웃긴 인상을 남기는 듯합니다. "뒤에 가서 담 좀 키워드려라", "묻고 더블로 가",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이 XX야"같은 대사들은 여전히 밈으로 남아있는 대사들입니다.

고니는 어떻게 살았을까

아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고니는 정마담이 입힌 총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길을 옮기죠. 열차에서, 그는 운명처럼 자신을 계속 괴롭혔던 곽철용의 부하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스승이 열차에서 떨어져 죽은 것처럼 자신도 곧 그렇게 죽을 듯한 장면들이 연출되지요. 칼에 한 번 찔리고, 돈가방을 기차 외벽에 걸어 겨우 목숨줄을 잡은 고니는 허망한 장면에 마주합니다. 목숨 걸고 아귀와의 대결에 따낸 돈들이 돈가방에서 나와 흩날리는 모습을 말이죠. 그때, 고니는 평경장의 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점점 가방은 고니의 몸을 붙잡기 힘들어지죠. 아트의 경지로 올린 그의 화투 기술처럼, 그의 삶도 예술처럼 마무리할 순간에 다다른 것이죠. 

그러면서 고니는 회상합니다. 자신의 도박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그리고 생각하죠. 이 정도면 괜찮다. 누나의 돈도 전달했고, 평경장의 원수를 갚았으며, 다친 고광렬도 구했다. 그렇게 그는 그 순간에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그렇게 온몸의 힘을 빼고 곧 열차 밖으로 떨어집니다. 

이후 정마담과 경찰의 장면을 통해, 죽은 사람은 곽철용의 부하로 밝혀지죠. 그리고 고니는 유유히 살아 해외에서 여전히 돈놀이하는 타짜로 비치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저는 똑같이 낙하한 두 인물의 차이는 바로 몸을 이완시켰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곽철용의 부하는 고니를 여유롭게 죽이려다, 오히려 자신이 열차 밖으로 떨어지게 되죠. 떨어질 때 굉장히 분하고 여운이 남았을 겁니다. 몸이 경직되었을 것이고, 그 낙하 충격을 고스란히 온몸이 받았어야 했을 겁니다. 반면의 고니는 마지막 순간에 인생무상을 느꼈죠. 더 이상 삶에 미련을 못 느꼈고, 그대로 가도 좋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오히려 그런 태도는 충격 당시 몸을 이완시켜 충격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교통사고의 순간에서 핸들에 힘을 빼고 그 순간을 받아들였더니 오히려 산 사람처럼, 고니도 비슷하게 생존한 것 아닌가 싶네요. (뭐, 영화의 주인공이니 살리는 건 당연했을지도요)

 

낭만 가득한 영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은 시간이 정말 잘 간다는 점이에요. 그럴 만도 한 것이, 도박판의 긴장되고 몰입되는 그 순간순간들이 모여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으니까요. 흡입력 있는 도박판의 긴장감과, 대담한 인물들의 기술, 그리고 서로 속고 속이는 진실이 만무한 이 세계에 참 빠져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계에 우정과 사랑이 꽃 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생사는 낭만적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정말 재밌는 작품입니다.

 

2023 7 11

평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