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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새 신을 신고

늘 새 신발을 신을 때는 기대보단 걱정이 앞섭니다.
이 신발이 내게 맞을지 걱정된 다기보단, 내가 이 신을 신고  험한 길을 다녀 헐게 될 것을 걱정합니다.
지금은 깨끗하고 뼈대가 허물어지지 않은 멋진 신발이지만, 곧 내가 못나게 만들 거라는 생각에 다른 값싼 신발을 선택해 버리는 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5만 원 이내에, 더러워져도 티 나지 않은 검은색 운동화를 선호해 왔습니다.
대충 막 굴리며 신고, 물이 새는 지경에 이르면 새로운 신발을 사버리면 됩니다.
이 방법은 가장 걱정 없고, 가장 돈을 아끼고, 가장 단순한 길이었습니다.

늘 그렇게 살아오다가, 갑자기 새로운 신발이 사고 싶어 졌습니다. 이번엔 검은색이 아니라 새하얀 새 신을 신고 싶었습니다.
고가의 비싼 신발은 쳐다도 안 보던 저지만, 한 번쯤은 검은색과 함께 흰색 신발을 함께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동창 녀석도 제 번쩍이는 충동에 기름을 부어줬고, 저는 고민 없이 질렀습니다. 나이키 마크가 그려져 있는 멋진 새하얀 운동화를 말이죠.

새하얀 이 신발을 사고 나서 처음으로 외출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큰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새하얗다는  인식 때문에 길을 걸을 때 조심하게 됩니다.
행여 더러운 오물을 묻힐까, 신발을 예의주시하며 걷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심지어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내가 과연 이 신발을 신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10만 원이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비싼 신발을 나를 위해 사서 신고 있는 이 순간은 성찰마저 하게 만듭니다.
정직히 말하자면 자신감보다는 일을 저질렀다는 후회가 더 크게 밀려듭니다.

그렇지만 더 밀려날 곳도 없습니다.
이 신발에 걸맞도록, 그리고 더 비싼 신발도 척척 신을 수 있도록 열심히 걷고 움직일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 신발도 돌아볼 수 있는,
자신을 계속해서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