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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에 예술가는 어떠해야 하는가 <김영하 작가 : 인공지능시대의 창의성 9/14/2023>

배경

저희 학교는 지방 국립대라 그런지, 꽤나 지원이 많은 편입니다. 이미 저는 등록금 한 푼 안 내면서 오히려 장학금을 받으면서 지내고 있고요. 그리고 23년도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공연, 행사, 강연들이 많아진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제가 있는 의과대학 캠퍼스까지 강연 홍보 현수막이 붙더라고요?! 심지어 TV에서만 보던 김영하 작가님과 표창원 의원님이 오셔서 강연하신다니, 군침이 싹 돌았습니다. 특히나 인공지능? 제가 아주 애정하는 주제를 갖고 멋진 작가님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셔서 말씀을 나눌 수 있다니 정말 기대가 되었습니다. 학기 초 3주간은 큰 시험 없이 과목 진도만 무작정 나가는 시간이었어서, 본 캠퍼스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강연을 보리라 계획했었습니다.

작가님 뵈러 가야겠지?!

당신을 기다리면서

밥도 오랜만에 본캠 학식으로 때우고, 강연시작 거의 1시간 전 쯤에 미리 가 있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제가 85번째더군요. 선착순 100명까지만 현장 접수 후 입장이 가능했는데, 간신히 들어온 셈이었습니다. 입장하고 보니, 현장 접수 100명은 잘 안 보이는 2층 강당에서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작가님을 못 본다는 아쉬움이 매우 컸는데, 그래도 들어온 것만으로 감사함을 느끼며 남은 시간 기다렸습니다. 2시까지 한 40분 남았었는데, 이때는 아이패드 켜서 back공부나 하면서 있었습니다. (완전 TMI..)

현장 접수 줄이 길어서 당황했던 나

 

그러면서 머리 한쪽으로 상상을 마구 했던 것 같아요. 오늘 강연이 어떤 내용일지보다,

"과연 김영하 작가님은 어떤 분일까?" "팬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면 사인이라도 해주실까?"같은 쪽으로 더 궁금했습니다. 얼른 강연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막 오를 때 쯤, 작가님께서 등장하셨습니다. 

2층이라 너무 아쉬웠따..

 

ChatGPT가 뒤집어버린 질서

김영하 작가님은 자신을 교수님이라고 소개하셨던 것처럼 정말 젠틀하고 멋진 분이셨어요. 말을 너무나 조리 있게 잘하셨고, 무엇보다 재미도 있어서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듣고 있던 학생들 모두가 즐겁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기록은 남겨야 하니까, 작가님의 강연 내용을 조금 간추려 볼게요.

너무 멀기만 한 당신 ㅠㅠ

거짓말하는 AI의 출현

최근 인공지능은 2016년 알파고 사태를 넘어서, 2023년 chatGPT로 우리 사회에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이런 대단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의향은 크지만,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혹여나 이 기술이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하죠. 현재 전문직종으로 여겨지는 변호사, 회계사, 의사는 각자만의 전문성을 근거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전문적인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다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직종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영하 작가님께서는 예술가를 콕 집어 들면서 이야기를 전개하셨어요.

여러분들은 chatGPT의 '세종대왕 맥북 던짐 사건'을 아시나요? 조선시대의 세종이 현대식 컴퓨터인 맥북을 던졌다는 말은 정말 이질적이면서 허구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런 엉뚱한 대답이나 내뱉은 GPT는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작가님은 힘주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창의력'을 인공지능 기계 따위가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죠. 이 세상에 '현대판 피노키오'가 탄생한 셈입니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그러면서 작가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창의력에 대한 의문을 던져요. 요즘 사람들은 창의성이 없다고 하는데, 과연 창의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하셨죠. 교수님께서는 인간과 동물의 큰 차이점이 뭐냐고 먼저 물어보셨어요. 여러 가지 대답들이 나왔지만, 그중에서 교수님께서는 인간만이 '강의행동'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의를 통해 인간들이 축적해 온 무형의 지식들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었고, 비로소 문명을 꽃피우는 밑바탕이 될 수 있었다면서 말이죠.

창의성도 밑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생긴 능력입니다. 문명을 꽃피우기 전까진, 창의성은 실은 생존에 좋지 않은 능력이었겠죠. 그때는 더 좋은 신체능력과 협업 능력을 가진 자들이 생존하기 유리했을 겁니다. 골방에 갇혀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당장에 먹을 것 하나 구해오지 못했을 테니 각광받지 못했을 테지요. 놀랍게도 이런 명제는 현대사회에도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당장에 창작보다, 직장 동료와의 협업 능력이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더 도움이 됩니다. 여전히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곳이고,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니까요.

그럼에도 창작, 예술 활동은 꼭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늘 반복되는 무채색 일상에, 생동감 넘치는 색방울 영감을 던져주는 건 예술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어 미술관에 가거나, 뮤지컬을 보곤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린 새로운 생각과 세상을 마주하고 즐거워합니다. 그 영감을 제시해 주는 사람들이 예술가이고, 그들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야 하는 입장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예술가들은 인공지능에게 그 자리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창의성이 이젠 기계가 더 잘하는 시대가 온 것이죠. 실제로, 교수님께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작품 여러 점을 가져와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셨는데, 인공지능이 훨씬 인간 같은 창의성을 보여준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창작물은 더 부자연스럽고 해체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보여주는 창의성은 한계가 있음을 와닿았고, 정말로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다 해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미래가 너무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인공지능과 인간, 각자가 제시해 주는 창의성에는 장단이 있죠. 인공지능은 출처미상으로 제한 없이 마구잡이로 작품을 찍어낼 수 있는 반면, 인간은 출처가 있는, 유한하면서도 특별한 작품들을 조금씩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두 존재의 창작은 서로를 보완시켜 주지요.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결국 '인공지능의 수혜'를 받는 사람들이니, 영리하게 공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창의성은 때가 있다

 

 

끝으로

저는 이렇게 작가님을 눈앞에서 본 게 흥분되어서 강연 내내 꼭 사인을 받았으면 했습니다. 그렇지만 2층에 있어야 했고, 또 2시간 후인 4시에는 수업하는 교실로 들어가야 했기에 시간도 부족했었습니다. 강연을 정시에 마치고 계속해서 질문을 받으셨는데, 멋진 질문을 한 학생에게 친필 사인이 담긴 자신의 소설책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입술에 불나도록 질문을 퍼부었고, 결국 도중에 저는 먼저 강의실을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강의실로 돌아가는 길은 꽤나 행복했습니다. 계속 암기만 하던 제 지루한 무채색 일상 캔버스에, 살아 숨 쉬는 영감 한 스푼을 들이부은 기분이었거든요. 그래서 꼭 이때 기억을 남겨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벌써 4달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렇게 남깁니다.

 

추신 : 인공지능이 앞으로의 세상을 더 반전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굳건히 해주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무수한 정보를 모은 덩어리인 인공지능에게서 어떤 능력이 '창발'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제가 사회에서 활동하는 시대에 인공지능을 옆에 끼고 살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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