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수님은 '페스트'와 함께 '이방인'을 말씀하셨을까
내가 카뮈에 대해 알게 된 건 작년 1학기 고전 명저 수업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카뮈의 소설 ‘페스트’([페스트] 부정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희망 (tistory.com))에 대해 배웠는데, 교수님께서는 어째선지 페스트를 논할 때, 자주 ‘이방인’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셨다. 아무래도 같은 작가다 보니, 그리고 카뮈의 작품의 으뜸이 ‘이방인’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교수님 말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태양과 칼과 권총. 그 이상은 내가 이해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그 부분을 반복해서 말씀하셨던 것을 생각하면, 기억할 건 충분히 기억한 것 같다. 물론 이 기억이 무의식에서 부유하다, 갑자기 강렬히 떠오른 그 순간 때문에 기억하는 걸지도 모른다.
줄거리
이 소설의 주인공 뮈르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인물이다. 이 소설은 첫 시작, 그의 어머니가 죽고 장례를 진행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그는 이에 대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고는 장례를 마치고, 예전에 눈이 맞았던 마리라는 여인과 함께 수영하고, 사랑을 나누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재미난 것은 그의 심리에 대해 묘사가 잘 되어있다는 점이다. 남의 기분을 위해 비위를 맞추는 일을 잘하지 않으며, 솔직한 마음 그대로 행동한다. 이런 그는 아랍인들에게 쫓기는 자신의 친구인 레몽을 돕다가, 결국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이게 되는데..
감상
태양아래 위협받는 존재
1부 마지막에서는 뫼르소가 아랍인을 총으로 쏘는 장면에 대해 나온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척이나 강렬했다. 엄마가 죽고 나서 장례를 치르는 동안 느꼈던 태양의 열기, 그것이 위협하는 아랍인의 칼에 반사되어 그의 얼굴을 뜨겁게 지졌을 때의 그가 느낀 감정은 굉장히 뜨거웠을 것 같다. “그의 전 존재가 팽팽히 긴장했다”는 대목처럼, 그에게는 그 순간이 치욕스럽고 불쾌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순간부터 무의미하고 허무했던 그동안의 삶이 뜨거운 태양 아래 불타기 시작했을 것이다.
부조리의 끝에서 그가 본 것
2부부터는 본격적으로 뫼르소가 부조리를 겪는 장면이 나온다. 사건보다도 과거 뫼르소의 태도를 트집 잡아 사형을 주장하는 검사, 피고인의 진술은 의미 없다고, 자신이 변론하는 게 최고로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 국선 변호사, 선동과 의심의 물결로 요동치는 배심원단들. 법정에서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겐 부조리하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이상과 현실(사회)의 괴리를 확인했을 때, 그가 느낀 외로움과 허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부조리에 마주한다. 곧 사형을 앞둔 그 순간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한다. 이리저리 생각의 바다를 부유하다, 마지막 결론에 도달한다. 죽음으로써 나의 부조리를 알리겠다고. 그래서 어쩌면 첫새벽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고.
그 순간, 그는 삶의 기쁨을 맛본다. 삶의 끝에서, 그동안의 삶이 행복했고 세상은 형제와도 같았음을 깨닫는다. 이 부분은 이방인이라는 작품이 현재까지도 여전히 빛나는 이유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존주의 문학의 한 획을 그었다고 봐도 손색없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뚜렷해지고 그동안 감사한 삶을 살아왔음을 말이다.
오히려 무미건조했기에 극적일 수 있었던 뮈르소의 삶
'이방인'이라는 작품은 워낙 짧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현대인의 삶을 대변하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있어서, 오히려 무덤 해진 삶이 그것이다. 뮈르소의 경우는 너무나 더운 날씨가 그를 건조하게 만들었으리라. 심지어 그의 어머니가 죽고 나서도 그가 뱉어내는 문장들은 사뭇 낯설기까지 한다. 어쩌면, 이런 냉소적이고 무미건조한 문체가 현대인들의 마음에 들기에 여전히 읽히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잘 드러난 부분은 마리가 자신과 결혼하는 일을 묻는 장면이다. 그는 솔직하게 별생각 없다는 것을 내비치며 여인에게 말한다. 우리 대한민국 문화권이었으면 좋으면 좋고, 싫다면 싫다고 말할 텐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렇게 말하는 그가 꽤나 재밌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이 책이 주는 심연의 감정과 부조리의 답답함, 카뮈의 자조가 섞인 묘사 등등에 정신이 여러 번 아득했다. 그런데 멈출 수 없었다. 이 한 남자가, 자신의 운명 앞에서 어떤 선택을, 어떤 생각으로 할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이방인의 여정 마지막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도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나라에서 이 이방인은 죽음으로서 이 뜨겁고, 무관심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공감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당신과 내가 공감할 수 있는가. 이는 장차 의료인이 될 내가 계속해서 생각해봐야 하는 질문이라고 본다.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공감이라는 게 단순히 말을 들어주고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것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뫼르소는 판사로부터, 변호사로부터, 마지막엔 부속 사제로부터 끊임없이 ‘공감의 요청’을 받는다. 공감이란 것이 나와 상대방의 존재 인정, 그리고 둘 사이 마음의 공명이라고 보면 좋을 듯한데, 이 책에선 뫼르소는 거의 누구와도 공감하지 못한다. 대부분은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그의 감정을 혜아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긋난 버린‘공감의 요청’은 마지막에 부속 사제에게 ‘폭발적인 거절’로 되돌아간다. 참 재미난 것은 사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신에게로 의지하라 주장하고, 거절하고도 그를 연민으로 바라본다. 누구보다 신의 아들들을 돌봐야 할 사제가, 신의 아들을 돌보지 못한 셈이다. 마지막까지도 부조리한 이 상황 속에서 뫼르소는 하나의 아름답고 역설적인 결론을 펴낸다.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 . 가히 죽음 앞에서 선 신의 아들이 신의 도움 없이 세상과 하나 된, 모순적이고도 놀라운 상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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