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추천도서에 떡하니 있었던 책
나는 2년간 수험생활을 하면서, 메가스터디 교육의 이원준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었다. 물론, 온라인 수업이긴 했지만, 이런 대단한 선생님과 그의 독서 수업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감사했다. 엄청난 독서량으로 다져진 그의 배경지식으로 놀라는 순간이 많았고, 나도 그처럼 많은 책을 읽고 내재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수험판을 벗어나 원하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원준 선생님의 이야기를 가끔 찾아보고 있다. 특히 선생님의 블로그를 이웃해서 눈팅하고 있는데, 한 번은 선생님께서 추천하시는 도서 목록 포스팅(2021학년도 이원준 추천도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경제학 부문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이 책. 유시민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던 지라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들었다. 또한, 수험생을 위주로 가르치시는 분이시니, 전공자들이 공부할 법한 어려운 도서를 추천하진 않으셨을 것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래서, 부족한 경제학 지식을 확장하고자 이 책을 중고서점에서 구매해 읽었다.
감상
시장과 개인, 국가, 그리고 세계
이 책은 총 3부에 걸쳐서 서술된 책이다. 처음에는 시장과 개인이라는 제목으로 경제학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알다시피, 경제학은 인간을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개인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여긴다. 그래서, 그런 이들이 경제 활동하는 시장은 당연히 합리적이고 오류 없이 진행되는 '완전 시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론과 달리 현실 속 경제 주체들은 합리적이지 못할 때가 많다. 비이성적일 때도 있고, 심리적 요인에 의해 선택이 흔들리며, 심지어는 쾌락을 위해 살아가기도 한다. 개인들의 이러한 '일탈'은 시장 경제에 어느 정도의 모순이 있음을 보여주는 단초이기도 하다. 이를 보완하고자, 국가가 필요한 영역에 대해서는 시장 개입을 용인해야 한다. 그것이 2부, 시장과 국가의 주 내용이다.
국가는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돈을 쓴다. 사회 보험제도와 비가치재의 제재, 독점 방지 및 공공재 제공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오로지 국민이 낸 세금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쓰이는 수단이 된다. 아무튼 국가는 불완전한 경제 주체들을 보호하고, 더 튼튼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이바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20세기 말부터 시장에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국가 간 자본의 이동이다. 국제무역이 가능해지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자본의 이동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간극은 더욱 깊어졌고, 심지어 약한 국가가 파산해버리고 만다. 3부는 바로 이러한 시장과 세계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3부 파트는 내용이 다른 파트에 비해 짧지만, 정말 스케일이 크고 어렵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조금 돌려 말하자면, 이쪽으로는 내가 아는 지식이 정말 바닥이었다는 소리가 된다. 그래서 조금 고통스럽게 읽었던 것 같다. 아쉽지만 이 부분은 계속 보완해 가면서 읽어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혹시 모르지. 나중엔 세계정세를 파악하는 데 주요한 도구로 삼을 수 있을지?
유시민만이 쓸 수 있는 글
유시민이라는 사람의 글을 처음 접한 건 그의 저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거꾸로 읽는 세계사] 한 곳으로 수렴하는 이야기 (tistory.com))에서 였다. 학생 운동을 하고 여러 번 감옥도 다녀온 그의 사회 정의를 향한 에너지가 이 책에 잘 드러나 있었다. 이런 그의 힘 있는 문체는 '경제학 카페'에서도 볼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온 경제학도이지만, 경제학에만 국한되지 않는 그의 폭넓은 지식은 이 책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글도 굉장히 잘 쓴다. 개인적으로는 비유를 써서 표현하는 게 일품이라 생각한다. 통찰력 있는 표현과 그의 당돌한 문체를 보면 훅훅 빨려들어간다. 괜히 이원준 선생님께서 유시민 작가를 '최고의 글쟁이'라고 말하는 게 아닌 듯하다.(이원준의 수능 추천도서(2015년판)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그는 첫 장부터 경제학은 인간을 차갑고 합리적인 경제주체로 본다는 것을 지르고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정의를 탐탁지 않아 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이 얼마든지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늘 이성적인 존재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젊은 시절 자신을 데려다 놓은 듯이 그는 이런 불완전한 주체로서의 인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시장을 보완하는 국가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는 것이리라. 내가 6월 달에 읽었던 '36.5도 인간의 경제학'과도 같은 관점을 취한다. 결국 경제학과 심리학을 결합한 '행태경제학'에 가까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듯 보였다. 유시민은 누구보다 차갑게 경제 현상을 바라봐야 할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마음은 늘 뜨겁게 인간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피와 살이 되는 배경지식
경제학을 따로 공부안한 독자들을 생각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학을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보였다.
먼저 과감한 생략과 뚜렷한 예시가 눈에 들어왔다. 많은 조건으로 어지러운 모델을 만드는 경제학이지만, 그는 과격하게 그 모델을 단순화시켜 결론만 간단히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애초에 이 책을 읽을 경제학 초심자인 독자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예시 역시 많이 전달하고자 했다. 이론적으로 추상화된 정리들만 전달하면 그건 경제학개론 공부이다. 유시민만의 독특한 문체와 통찰력을 보고자 하는 보람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때문에, 그는 광범위한 지식을 총동원해 독자들을 지식의 바다에 빠뜨려버린다. 그 바다는 우리나라 정치 문제처럼 뜨거운 적도해상도 있고, 너무 복잡하게 각 국가가 얽히고설켜 숨쉬기 어려운 심해도 있다.
또한, 그는 독자들이 이 책에 머물지 말것을 당부하고 있다. 경제학의 바이블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케인즈의 '고용, 이자, 화폐의 기본 원리' 등 아주 기본적인 유명 저서를 잘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풀었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그의 책에 잘 연결시켜 하나로 엮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엔 추가로 그가 추천해 주는 경제학 도서들을 목적에 맞게 분류해서 적어두었다. 이를 보면, 유시민은 저자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추신 - 도쿄 여행과 책
2023.7.24
이번 도쿄 여행 중에 계속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한 절반쯤 읽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던 것 같은데, 의외로 재미가 있어서 귀국한 후에 후딱 읽어버리기도 했다. 왜 수많은 책들 중 하필이면 이 책을 들고 갔냐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환율' 때문이다. 환율을 이해하면, 해외서의 경제활동의 의미를 알 수 있을 테고, 여행의 새로운 연결 고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고 3부의 환율 파트까지는 못 읽었다는 게 함정)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성공적이다. 돌아와서 읽으니, 사후적으로 내 경제활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환율 전망은 사실 그리 좋진 못하지만, 엔화에 대해선 원화의 평가절상 상태이다. 따라서, 일본여행하나만큼은 쉽게 갈 수 있는 셈이다. 그덕에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을 많이 가고 있는 추세이다. 과거 IMF 외환위기 터지기 전에, 해외여행을 그렇게 많이 가서 달러를 유출시켰다는데. 옆나라 일본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본을 유출하는 행위인 것은 다를 바 없다. 즐기기 위해 놀러 가는 것을 지양하고, 나도 이제는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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