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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자유로부터의 도피] 고독과 맞설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지어니

자유로부터의 도피 - 예스24 (yes24.com)

서문

고독과 선생님과 책

내가 중학교 1학년에 다닐 때, 나를 꽤 괜찮게 생각해 주시던 국어 선생님이 계셨다. 다만 이 분이 조금 괴짜 같으신지라 친구들은 하나같이 별로 좋아하지 않은 눈치였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수업 중에 실수하면 칠판 앞으로 불려 나가 등짝 스매시를 당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당할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신기하게만치 머리를 쓰다듬으시고는 상황을 그냥 지나가게끔 해주셨다.

그런 분 이야기를 왜 이렇게 독서감상문 서문에 장황하게 풀어썼냐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분이 내게 남기신 한 마디 때문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밥 먹고 교실에 돌아가던 길에 그 선생님을 뵌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내게 무엇을 보고 그러셨는지 모른다. 그런데 인사를 하는 내게 “재용아,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성장하는 법이란다.”라고 하시곤 지나가셨다. 그땐, 나도 그냥 지나가는 말이겠거니, 적당히 놀라는 부모님의 말씀과 비슷하겠거니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마음이 공허할 때마다, 혼자일 때마다 이 말이 계속 떠올랐었다. 그때마다 잘 참고 넘길 수 있었고, 오히려 내 자아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더 흘러 이 책을 접했을 때 비로소 선생님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20세기, 자유와 도피의 폭풍 시대

이 책은 내가 애정하는 작가인 에리히 프롬이 쓴 초기작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가장 에리히 프롬을 잘 설명하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세계적인 고전 교양서로 여겨지는 이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줄거리는 사실 까보면 별 거 없다. 그동안 인류는 자유를 추구한 역사를 써왔는데 오히려 자유는 인간에서 멀어졌다는 점이 골자이다. 특히나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이 2차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쑥대밭이 된 이후에 쓰인 책이라 나치즘과 자유 사상에 대해서도 한 챕터를 할애해 가며 설명한다. 자유를 쟁취해 온 역사와 그렇지 못한 현대인, 그 도피의 메커니즘을 다룬 책이라고 보면 된다.

 

감상

실제론 자유롭지 못했던 인간들, 그리고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방법

프롬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통찰은 정말 놀랍다. 그는 '자유의 역설'에 대해 다루면서 루터와 칼뱅, 그리고 중세인과 근대인을 다룬다. 자유의 역설이란 역사가 진행되면서 인간은 자신을 옥죄던 모든 유대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바로 그 자유가 인간을 고독과 불안에 빠뜨리고 개인을 보잘 것 없는 무의미한 존재로 압도시킨다는 것이다. 중세에는 계급의 차이와 신과 인간의 차이로 인한 괴리를, 근대에는 자본의 차이로 인한 괴리로 개인은 무력감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소극적인 자유와 적극적인 자유를 구분하면서 인간은 소극적인 자유에서 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소극적인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하며, 적극적인 자유는 무엇을 위한 자유를 말한다. 이를 해석하자면, 역사가 닦아놓은 기틀인 소극적인 자유의 땅 위에 적극적인 자유의 꽃을 피우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해답은 가장 마지막 장에서 언급된다. 그는 자신을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개인으로 인식하고, ‘삶의 의미는 하나뿐이라는 것, 즉 산다는 행위 그 자체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자신이 자발적으로 행동할 때 비로소 적극적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자발적인 행동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으로 사랑을 말한다. 이 사랑은 가학적, 피학적인 사랑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나오는 것을 말하며 나머지는 공허한 것들이라고 비난한다.(142쪽)

 

번역서를 읽는다는 건 늘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겠다. 첫째는 처음 부분을 읽다가 중도포기를 몇 번이고 고민했다는 것이다. 번역이 너무 어렵게 돼서 그런가 읽을 때 글이 계속 튕기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골자는 무엇인가? 를 집중적으로 찾아가면서 넘겨 읽었다. 굉장히 교양이 되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다 날려가면서 읽었으니 참 아쉬울 뿐이다.

 

자유로부터 구속된 히틀러

두 번째는 나치즘에 관한 것이다. 그는 히틀러를 가학적 성향의 대표격으로 보고, 독일 국민들을 그의 성향에 동참하도록 했다는 통찰은 참 흥미로웠다. 결국 가학적 성향과 자학적 성향 모두 소극적 자유로부터 오는 고립감을 해소시켜 주는 데에 불가하다고 했으니 히틀러는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지 못한 셈이다. ‘자유로부터 도피’한 셈이고 여느 사람과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진정한 나만의 자유를 향하여

마지막은 나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늘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계속 했었다. 그저 누군가에 의한 삶. 학교를 가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그런 삶. 나는 그 안에서 무의식 중에 자유를 향한 갈망을 느꼈고 그 도피처로 PC방을 삼았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1평도 안 되는 공간, 그러나 그 속은 거대하고 초연결된 놀라운, 자극적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이제는 그 도피가 무의미하고 쓸모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나가고 있다. 부족한 지적 세계를 채우려 도서관과 서점을 들리며, 다른 세상을 보기 위해 동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다가가며, 내 시간을 쪼개가며 통제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자발적’이 되게, 그리고 그 끝에 내가 마음껏 닿을 수 있고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을 만나도록, 부단히 움직여야겠다고 다짐하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인상 깊은 문장(혹은 구절)과 그 이유

물론 내가 바깥 세계를 없애는 데 성공하면, 나는 혼자 고립된 상태로 남겠지만, 그때의 고독은 화려한 고독으로, 그 안에 있으면 내 밖에 있는 사물들의 압도적인 힘도 나를 분쇄할 수 없다.


참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다. 한 개인의 정신세계가 물질세계를 이겨낼 때의 전율이 온전히 담긴 문장이다. 물론, 이 부분은 가학증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부정적으로 묘사된 듯 싶다. 다만 이 부분만 떼어다 본다면, 외부 세계를 초월한 내면은 그 무엇에도 결부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 고독하고 파괴되지 않는 유일한 것이 된다. 그것을 잘 표현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인상이 남는 구절이라고 본다. 심지어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내용도 떠올리게 해준다. 아무리 외부의 것들이 압도적인 힘으로 짓누르려고 해도 프랭클은 부서지지 않고 꿋꿋이 내면세계에서 아내를 만났다. 그것이 정신의 위대한 힘이 아닐까 싶다.


책 내용과 관련된 사회 이슈나 경험담을 기술/본인의 의견과 평가

에리히 프롬은 사회가, 문화가 만들어내는 가짜 생각과 가짜 자아, 그리고 그것에 잠식된 인간을 비난한다. 그러면서 적극적인 자유의 한 일환으로 적극적인 생각을 높이 여긴다. 이 생각의 결과인 사고는 항상 새롭고 독창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남들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내는 ‘발명적 사고’가 아니다. 스스로 내적이든 외적이든 세계로부터 발견하는 사고의 활용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독창적인 생각이 합리화에는 결여되어 있으며, 합리화는 그저 사후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좋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한다.(203쪽)

나는 이 부분에서 크게 머리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무언가 박식하다는 사람들을 보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똑똑하다" 내지는 "관심이 많은가보다"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만치 내 마음에는 들으면서도 불편한 기분이 들었었다.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기분. 머릿속에 그 내용이 똑같이 저장되었다가 똑같이 인출하는 컴퓨터적인 사고. 그것이 바로 에리히 프롬이 지적하는 부분과 일치했다. 적어도 그 내용이 자신에게 거쳐지고 무언가 나만의 새로운 생각, 가치를 만들어낸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독창적인 사고’를 해내는데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기분이다. 그것은 내가 만난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날 사람들 역시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것 역시 내 생각이다. 아무리 개인의 감정이 통제되고 사유가 무가치해지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사람에게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인간성을 불태워 없애는 것보다 승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프롬은 정말 시대를 앞서간 정신분석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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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독후감으로 제출했어서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