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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호모 데우스] 21세기에 신성을 획득할 인간을 그리다

중앙에 푸른 타원형 그림은 지문인가?

과거에서 현재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감명 깊게 읽고, 그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었다. 그 후 바로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읽은 ‘호모 데우스’라는 책. 초반 부를 재미있게 읽다가 다시 수능 준비에 돌입해야 했기에 한 100페이지 남짓 읽고 말았었다. 그리고 이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의제 : 위태롭던 인류의 찬란한 미래를 그리다

 이 책은 크게 의제, 1부, 2부 3부로 총 4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의제 파트에서는 20세기의 3가지 의제인 기아, 역병, 전쟁에 대해 유발 하라리가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이 3가지 의제 모두 당시에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적어도 21세기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과거의 문제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하라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3 주제가 남긴 현대의 문제들을 지적한다. 이제 모두 굶지는 않지만 부자는 값비싼 웰빙식을, 서민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어 성인병에 있어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상식의 역전'을 보인다. 또한 과거 세계를 죽음으로 물들인 흑사병, 천연두는 이제 현대의학이 종지부를 찍었으나 10년대에 이르러 사스,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까지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하고 있기에 의학의 앞길은 여전히 흙탕물이다. 전쟁 역시 미소의 냉전을 끝으로 아프리카, 중동 지방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21세기에도 테러리스트의 ‘쇼’, 독재정권, 이념대립이 존재하고 있기에 조심할 것을 경고한다. 특히나 과거와 달리 현시대의 주체들은 가까운 미래에 전쟁이 일어날 것을 거의 예상하지 않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는 20년대인 지금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중국과 대만 등 여러 국가에서 전쟁의 기미가 보이는 것을 보아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주제라고 느꼈다.


 여기서 하라리는 21세기의 의제 3가지 죽음, 행복, 신성을 소개한다. 건강한 삶을 넘어 영원한 삶을 꿈꾸는 ‘호모데우스’, 행복한 삶을 사는 ‘호모데우스’, 나아가 신과 같은 인간을 초월할 능력을 가질 ‘호모데우스’를 그는 상상한다. 특히 죽음을 초월하는 일과 신성에 가까워진다는 것의 의미를 끝없는 필요, 수요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내가 몸담을 의학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동시에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논쟁거리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탐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 윤리의 족쇄로 맥없이 추락할 것인가 늘 사회와 소통하며 바람직한 의학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게 중요할 것임이 분명하다. (신성 : 생명공학/사이보그-원격조종/비 유기체)

 

1부 : 과학이 일으킨 바람에 흔들리는 인본주의

 1부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농업 혁명을 통해 도시와 왕국을 구축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나 이 과정에서 동물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소와 돼지같은 일부 동물만이 인간에게 사육되는 가축이 되었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의 동물들이지만 비좁은 공간에 그들의 말을 침묵시키고 수를 늘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허구의 신을 믿으며 그들에게 많은 재산을 헌납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그들의 손에 맡기며 살아왔다.(신 - 인간 -동물) 그러나 과학 혁명이 시작되면서 인간의 가치를 제고하게 되었고 이는 신의 멸망으로, 인본주의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인간이 가진 감정에 대해서 그는 대부분이 '유대'라고 했고 포유류들은 감정을 어느정도 느낀다고 한다. 이런 감정은 인류를 특별하게 해 주지만 동시에 이는 그저 세월이 유기체에 축적해 온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다고 하다. 이는 마지막 그의 예언의 큰 맥락 중 하나다. 과학 시대로 오면서 인간의 영혼은 적어도 이젠 유신론자나 믿는 단어가 되었고 현재 ‘의식적인 마음’의 존재를 두고 과학이 많은 연구를 돌입하고 있다고 한다. 하라리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존재하는 세계 모두 다뤄주지만 그 역시 인간이 가진 ‘의식’의 존재에 한 가닥 희망을 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 역시 인간의 가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식, 생각이라고 여기기에 의식이 우리의 구성에서 어딘가에 존재하기를 빈다.

 

2부 : 인본주의가 무너지는 미래를 그리다

실제를 보지 못하면 실체를 보지 못한다

 2부에서는 인본주의가 판치는 20세기와 21세기를 점검한다. 특히 1부 마지막부분에서 그는 실제 3가지 중 '상호주관적 실제의 위력'에 대해 경고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허구의 것이 강력한 힘을 발휘해 실제를 왜곡하면서도 사회를 질서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분명 나도 어렴풋이 이런 부분을 염두하고 살아왔기에 앞으로 ‘허구’의 힘을 잘 이용한다면 내가 꿈꾸는 부와 명예,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할 수 있었다. 부푼 꿈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남들을 설득하고 강력한 질서에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꾸준히 독서하며 나의 세상을 만들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는 인간의 부족한 뇌용량을 지적하며 문자와 돈으로 세상을 연결하고 이를 시스템으로 구축해 강력한 질서를 추동하는 힘을 갖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만일 뇌과학이 발전해서 개개인의 뇌용량이 비대해진다면? 또는 아쉽지만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일부 특권층이 그 힘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시스템을 이루는 부분 중 중하층의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분명히 그가 말한 대로 빈부는 갈수록 심해지고 대량생산을 사람들이 육신의 삶을 부지하기엔 충분한 세상이다. 그러나 곧 그 빈부가 능력의 빈부로 이어진다면 분명 지금의 인본주의는 변화를 맞고 대다수의 사람들의 자아는 무차별적으로 붕괴할 것이라는 무서운 생각이 확 돌았다. 이제 성인이 되고 대학에 입학하는 내겐 너무 힘겨운 이야기이나 분명 2050년 그 전후로 웬만한 일들은 일어났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전에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종교와 과학은 단짝 

또한 2부에서는 '뜻밖의 한 쌍'이라는 소주제로 종교와 과학의 한 쌍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는 가치판단을, 과학은 사실판단을 추동한다. 종교는 질서와 목표로 사회를 이끌며 과학은 객관적 실체들의 힘을 이끌어낸다. 겉보기에는 두 개념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들이 하나로 어우러졌을 때에는 놀라운 시너지가 생긴다. 종교는 과학의 힘을 빌려 강력한 질서와 새로운 가능성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고, 과학은 종교의 힘을 빌려 급진전인 발전을 둘러싼 윤리적 족쇄를 부술 수 있다. 과연 엄청난 통찰이다. 지금의 거대한 종교는 천주교도, 미국도 아닌 구글, 애플과 같은 IT 기업이라는 그의 일침이 뇌리에 함께 꽂힌다. 정말로 거대 기업들은 겉으로는 각자의 제품을 만들고 기술발전을 이루는 것으로 보이나 그 기저에 소비자들에게 그들의 생각과 이념을 함께 알리고 있다. 강력한 질서를 구축하는 데에는 결국 과학이 아닌 인문사회적인 관점이 필수적이라고 느끼는 파트였다.

남는 건 경험 뿐

나머지 2부에서는 지식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감정은 의미를 만드는 것으로 인본주의의 핵심인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동등한 가치, 경험을 한다는 근대 계약에 전제조건이 된다. 이 사상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경험을 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가고 많은 이들을 만나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고 살아간다. 그것은 지금 분명한 ‘선’으로 받아지고 있다. 또한 지식에 관하여 그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지식은 고갈되지 않고 끝없이 축적되는 것이다. 이는 성장이라는 개념을 사람들에게 남겨 무한한 경제 성장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에 대한 ‘믿음’으로 현재 자본주의는 계속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이는 분명히 비영합, 윈윈게임이며 3부에서 나올 데이터교와도 연결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중세시대에는 지식=성경*논리 라고 했지만 지금은 지식=경험적 데이터*수학 & 경험*감수성으로 표현하고 있고 이는 곧 경험의 가치가 현시대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경험이 가진 감각적이고 귀납적인 힘을 믿기에 이 부분도 계속 되새기며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3부 : 데이터로 한데 묶이는 미래를 그리다

3부에서는 유발 하라리만의 관점으로 포스트 인본주의를 예상한 시나리오들이 나온다. 사실 이 파트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내용이 급진적이고 충격적이다. 때문에 내용이 가물가물하거나 이런 관점의 글쓰기를 해야 할 때 이따금씩 다시 읽으면 그때의 감정이 떠오를 것이다.

8장에서는 자유의지의 상실을 다룬다. 만일 맞다면 이는 인간이 다른 무엇에 의해 통제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그는 암시적으로 유일한 자아에 대해 의심을 품으며 수많은 내적 실체들의 존재 가능성을 열어둔다. 실제 연구를 통해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좌뇌)가 서로 피드백하며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9장에서는 지능과 의식을 분리해서 설명한다. 지식들을 통해 결정을 내릴 때 지능만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의식(감정) 없이 이를 행하는 인공지능이 우왕좌왕하는 인간보다 훨씬 우월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대다수의 직업, 특히나 의사들, 예술가까지 인공지능의 손아귀에 운명이 달려 있을 거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두 개념을 분리하면 당연히 의식의 강점을 추종하는 자유주의가 위협받게 되고 이는 인간의 가치를 잃음, 인간 가치가 집단만 유지, 소규모 특권집단에만 유지 세 시나리오로 설명하는 부분이 더욱 탄식을 자아냈다. 의식과 지능이 과연 충돌하는 개념일까? 의식이 지능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 가치는 없을까? 하라리는 꿈의 가치마저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 세태에 의해 짓밟힌 현실을 아쉬워하며 의식의 입지에 회의감을 표한다. 의식의 존재가치에 대해 계속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0부와 11부에서는 새로운 종교, '신흥기술종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흥기술종교를 그는 기술인본주의와 데이터교로 나누는데 기술인본주의는 기술로 인간의 마음을 조작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마음을 조작하는 신인류가 인본주의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흥미롭지만 그는 이것보다 데이터교에 대해서 충격적인 논증을 펼친다. 사람이 결국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 계속 데이터를 생산해 내는 유기체에 불과하다면 그 데이터까지 멈추지 않는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해석하고 연결해 모든 인간과 사물, 개체들을 하나로 연결할 수는 왜 없는가? 그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싶었던 그동안의 이야기의 종착역 있다. 현재에 사물인터넷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데이터교처럼 사람마저도 하나의 개체처럼 뭉뚱그려진 채 거대한 데이터 흐름 속에 녹여지는 상상은 정말 기막히고 오싹하다. 과학의 여러 분파마저 데이터처리가 이루어져 거대한 ‘데이터 나무’에 모두 흡수된다는 이야기를 그는 서슴지 않고 한다. 물론 이는 미래에 대한 상상 중 하나이지만 마지막에 계속 고민하고 앞길을 모색하려는 그의 말은 헛된 것이 아님이 분명해 보였다.

책을 덮으며 : 난 어떠해야 하는가

다 읽고 나선 무슨 SF영화를 본 듯한 허무감과 이개 공신력 있는 작가의 생각이라는 점에 한동안 충격에 사로잡혔다. 그러고는 공원에서 운동하면서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러다 든 가장 중요한 생각은 하나, 인간의 생명은 모두 동등한가?라는 점이다. 인본주의에 기반을 둔 현 의학이 포스트 인본주의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질 때 이 질문은 가장 최전방에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인간이 계속해서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을 축적하고 경험을 추구하는 한 초인류로 향하는 ‘하늘 길’을 분명 머지않아 나고야 말 것이다.  그 때 구시대적인 인본주의 발상을 고수할 것인가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가 내 스스로 계속 자문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지금 입장에서는 모두 평등하다는 입장이지만 또 모르지. 세상의 구정물을 흠뻑 먹고 생각이 바뀔지. 하나 확실한 건 내 시대 21세기에 그런 일들이 올 것만 같은 흥분에 550페이지를 녹이면서 읽을 수 있었다.


# 못 적은 것들
기술적 특이점
진화는 적응을 통해 생존과 번식을 이뤄낸다. 허나 행복에 도달하는 것은 적응이 아닌 생화학적 조절이다. 특히 행복은 쾌락과 어느 정도 동기인데 약물과 부처는 각각 해결책을 제시한다. 약물은 지속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부처는 쾌락 추구를 줄이자고 조언한다.
프로이트의 논증 : 젊은 병사가 가진 성욕을 육군이 억압하고 이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 전투에서 분출하도록. 이는 기계공학적인 접근임. 앞으로는 컴퓨팅적 접근이 대다수일 것.
인본주의는 정통 자유주의, 사회주의, 진화론주의가 있으며 이는 곧 개인주의, 공산주의, 파시즘과 연결된다. 자유주의가 현재 우수한 이유는 사회주의는 중앙집권 사회라 실수가 치명적, 자유주의는 그렇지 않기에 효율적이라 그렇다.
포스트 인본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진화의 열차에 올라탈 수 있는가?
정점-결말 법칙
데이터는 정보로 정보는 지식으로 지식은 지혜로 여과된다.
인간 뇌 만으로는 마스터 알고리즘을 제작할 수 없다. 개발자를 넘어선 존재가 있어야 한다.

 

추신 :

벌써 2년 전 글이다. 이때는 다시 새내기가 될 준비를 하던 때인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책을 좀 읽었었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패드 독후감 어플 뒤지다가 발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글 솜씨가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아마 내용이 너무 많아서 거의 필기하듯이 읽었던 모양이다. 아무쪼록 재미났던 책임에는 분명하니까, 이렇게 블로그에 남겨둔다.

 

2022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