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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딥메디슨] 환자를 위한 완벽한 의료를 고민하는 인간과 AI

이번엔 다르다!

에릭 토폴, 나는 그의 저서를 벌써 3번째 접한다. 대학에 들어가서 나는 도서관에서 그의 2014년작 '청진기가 사라진다'를 먼저 접했었다. 그걸 빌려와서 기숙사에 들어와 읽는데, 인공지능보단 의학 얘기가  많아서 새내기였던 나로선 읽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의료에도 이젠 환자만을 위한 '민주화의 바람'이 슬슬 불고 있다는 것이다. 만인의 의료를 위해 인공지능과 다양한 포맷의 의료기기들이 개발되고 상용화된 사례들을 일러주었었다. 그다음 작품인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도 내용은 한결 비슷하다. 한결같이 현 미국 의사와 의료 체제를 비판하면서, 3년 동안 달라진 인공지능 현황에 대해서 다루어주었다. 이때부터 조금씩 인공지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자신이 습득한 지식들을 책에 싣기 시작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전작보다 읽긴 편했으나, 여전히 의사들을 무차별적으로 까는 스탠스는 불편했었다.
그러나 이번 저서는 사뭇 다르다. 그의 태도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인공지능이 훨씬 대중화가 된 2019년 작이라 그런지 몰라도, 인공지능의 가치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고 더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의료 인공지능 현황을 다방면에서 사례를 보여주고 분석한다. 이를 통해 의사와 인공지능이 어떤 관계를 이루면서 환자에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주로 다루고 있다.

로봇팔과 사과라.. (출처 : 교보문고)

 

전반적인 구성 - 책마저 민주화를 향한다

총 13장에 걸쳐 논의가 이어진다. 줄기차게 인공지능이 의료에 가져왔고, 가져올 멋진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전작들에서 많은 피드백을 받았던 탓인지 몰라도, 내용이 많이 친절해졌다. 그래서 첫장에서는 아예 주된 인공지능 용어, 개념을 따로 표로 만들어서 알려주기까지 한다. 그리고 참고한 논문들도 수백 편이라는 것(!)을 책 뒤편의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보여준다. 그가 두 전작을 통해서 의료 인공지능 관련 업무를 많이 받은 듯한데(이것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나온다), 그 덕에 의료 인공지능을 더 깊이 이해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은 한 분야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더 쉽고 이해하기 좋게 설명할 수 있다.  그게 딱 지금 그의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다.
13장 구성도 참 탁월하다. 책 제목이 'deep medicine'이 아닌가? 그래서 각 장마다 수식어 deep을 붙여 의료, 시스템, 연구, 심지어 영양까지 의료인공지능이 투입할 수 있는 분야는 최대한 다뤄본다. 각 장은 토폴이 신중을 기해 배치를 해놓았고, 장과 장 사이의 연결도 매끄럽다. 이런 부분 하나하나가 토폴이 이 책에 공을 많이 들였음을 알 수 있었고, 인공지능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사뭇 진지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가운 AI의사, 따뜻한 인간의사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체한다는 기사는 다들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단순히 x-ray나 CT사진을 해석하는 영상의학과 의사들보다 AI가 더 정확성이 높다는 연구결과 역시 공공연하게 제시된 사실이다. 토폴은 AI가 잘 할 수 있는 의사의 '패턴화 된 분야'에 대해 먼저 다룬다. 영상의학과를 비롯해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등은 환자의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이 곧 실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읽는 대상은 사진이나 영상, 조직 샘플, 수많은 염기서열 등 다양하다. 다만 이 대상들 역시 '패턴화'되어 있으며, 질병에 걸렸으냐, 걸리지 않았느냐 같은 이분법적인 정답값을 라벨링 할 수 있다. (굳이 라벨링 없이 비지도 학습을 배워나갈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이 분야는 인공지능이 의사의 업무를 대체하기 가장 수월한 분야로 여겨지곤 한다. 패턴화 될 수 있다는 것은 곧 완전무결하게 대체가능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패턴화될 수 있는 영역의 의사도 종국엔 대체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토폴이 전작에 의사들을 향해 취했던 태도와 사뭇 다르다. 그것은 '인간의사'만이 환자에게 '정서적 교감'을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리라. AI는 분명 인간보다 영상처리를 수백 배, 수만 배 더 빨리 해낼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은 그들이 결국 '인간적이지 못함'을 반증한다. 인간의사만이 환자에게 진단과 치료를 '인간의 정서'를 담아 제공할 수 있다. 그것이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원래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담이지만, 현재 영상의학과는 환자와 대면하지 않고 페이가 셴 편이라는 점을 들어 의대생들에게 인기 있는 과이다.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환자와 대면하라는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일수도 있다)  분명 미래에는 모든 의사들이 환자와 더 많이 접촉해야 하고, AI보다 그들이 환자의 감정적인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AI를 투영해 바라보는 의사의 역할

좋은 의사의 조건은 무엇인가? 저명한 의대교수는 그 조건으로 임상(진료), 교육, 연구 이 3가지를 꼽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저 환자를 많이 치료하는 의사가 돈을 잘 번다는 이유만으로 임상에 대부분의 인재들이 쏠렸다. 그리고 이 지렛대는 임상 쪽으로 한껏 기울어진 나머지, 이젠 미끄러져 넘어질 위기이다. 의료계는 간혹 돈 욕심 없는 능력자들이나 스텝이나 교수로 남는다. 그러다보니 의대교수의 수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의대 증원이나 신설이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학생들을 가르치길 원하는 의대교수들이 부족해 정원을 새로 만들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연구는 어떠한가? 이 분야는 더욱 안타깝다. 가끔가다 한 학번에 한 두명정도가 남들과 다른 이 길을 선택한다. 기초의학을 선택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내가 저번 달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방문했을 때 교수님들께 들었던 이야기도 결국 맥락은 비슷했다. 상위 1% 안팎의 두뇌를 가진 의대생들이 연구에 뜻을 두지 않고 모두 임상으로 나가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것이다. 나는 교수님들의 의견에 공감은 하면서도, 이미 과포화 상태인 임상의 의사들을 연구로 돌리는 일이 정말 힘든 상황이란 것을 깨닫고는 좌절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인공지능이 연구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줄 것임을 일러준다. 토폴은 인공지능을 통해 오히려 우리 뇌, 신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연구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신약 개발에 있어서 수많은 인공 약품 제조를 데이터로 넣어줌으로써, 새로운 약품 제조식을 수만가지로 생성해 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사례들은 인공지능이 임상분야를 넘어서 의사에게 '창의적인 조수'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의학과 인공지능 모두 CCTV처럼 그 내부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지만 환자들은 결과만 좋다면 그 인간형 블랙박스를 기꺼이 수용한다.(120) 때문에 놀라운 입출력 사이의 캄캄한 경로를 이해하려고 우린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이 분야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인공지능의 시선을 투영한다면 미래 의학은 더 멀리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어두운 그림자 : 신뢰성과 사업성

이 책이 지니는 멋진 가치 중 하나는 인공지능을 온전히 예찬하고 있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너무 관심을 받는 나머지, 무수한 의료인공지능 모델들이 우후죽순 쏟아졌고 그것들을 하나씩 검토하다가 이내 진물나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토폴은 현재 의료 인공지능 개발 현황이 장밋빛 미래를 예견하는 것만큼이나 높은 정확도를 신뢰성 있게 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전했다. 그리고 다루는 범위 또한 패턴화 할 수 있는 일부분이라고 했다. 의료 AI가 상용화되어 주변까지 오려면 아직 시간이 있다는 인상을 짙게 받았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가진 문제점은 힘의 논리로 공룡기업의 전유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두번째 작품이었던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의 주된 이야기였다. 그 일례로 연구 사례들에는 구글이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전 세계 10대 기업에 꼽히는 기업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놀라운 의료 AI기술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시장에 먼저 적용시켜 버린다면, 결국 자본과 힘이 있는 자들만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되고 말 것이다. 이들은 '사업자'들이지 '자선단체', '정치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외쳤던 의료의 민주화와는 방향이 정반대인 셈이다. 그리고 '사망시기 예측 알고리즘'이나, '완화 의료' 같은 분야는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변동시켜 버릴 근거가 돼버린다. 원래는 위험이라는 것을 보장해줘야 하는 보험사가 위험이라는 개념을 무시해 버리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이 돈과 결부되어 버리면, 그 혜택은 의사나 환자가 아닌 개발자에게로 오로지 돌아가버린다. 이 때문이라도 의료계는 두 눈을 부릅뜨고 인공지능 이슈들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 진료실에 가장 멋진 동업자를 두는 상상

36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 나는 꽤나 가슴 설렜다. 무인 병원, 병상없는 병원 등 다양한 형태의 시스템을 상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의사로 일하는 동안에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을 생각해 보고, 그곳에서 나는 어떤 진료를 할지 상상하는 일은 참으로 즐거웠다.

나의 진료실에 나와 환자만 있는거라 상상하는 큰 오산이다. 내가 환자와 즐겁게 교감하며 대화하는 동안, 그 대화는 음성 번역 + 변환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EMR(전자의무기록)에 기록된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그 목록 근처에 예상 진단명들이 즐비한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 가장 가능성 있는 질병을 선택해 환자에게 일러준다. 그것은 나 혼자 해내는 것이 아니다. 나와 함께 AI의사가 기록을 환자에게 읊어준다. 그것은 길게 알려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원한다면 3줄 정도로 요약해서 환자에게 설명하는 건 일도 아니다. 마치 웹툰 'A.I. 닥터'처럼 나는 '바루다'를 옆에 끼고 환자와 대면한다. 원한다면 '바루다'를 환자에게 '이식'시켜주는 것쯤은 당연히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식된 바루다는 진료결과와 자신의 신체상태를 매 순간마다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바루다 같은 미래의료비서는 환자와 의사의 경계를 허물면서, 진정한 '의료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형태를 빌려서 말이다.

바루다가 인형같이 생긴 녀석이다. 이 작품도 재밌게 챙겨보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가고 싶어하는 분야는 정형, 신경, 재활로 근골격과 신경 파트에 대한 인사이트를 여기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아쉽지만, 사람의 '운동'과 '통증'과 관련된 인공지능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만큼 인공지능이 패턴화 하기 어려운 분야라 그런 듯했다. 뭐, 내 밥그릇은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적어도 내가 진료 볼 때 인공지능의 수혜를 전혀 못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 되었다. 이 책이 줄기차게 설명해 준 의료 Ai의 이점을 하나도 못 누린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딱 2019년, 그 시간이 멈춰있다. 2023년 최고의 이슈가 openAI의  chatGPT인데, 이 혁명을 보지 못한 토폴이 쓴 책은 지금 24년도 입장에서 '반쪽짜리 책'이라고 느껴졌다. GPT로 내과 전공의를 대체하겠다는 강연도 작년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일반적인 AI인 GPT가 환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들은 굉장할 것이다. 나는 토폴이 GPT혁명을 의료에도 적용시킨 사례를 들고와 하루빨리 '딥메디슨 2.0'을 내주었으면 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