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안녕하세요. Zeromm입니다.
저는 어제 영화관에서 어머니와 함께 당일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왔는데요! 정말 신기한 광경이더라고요.
보통 평일 오후에 느지막이 영화 보러 가면, 관객들은 많아야 전체 자리 중에 10퍼센트 정도 차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런데 개봉 당일이라 그런지 거의 20~30 퍼세트는 차 있는 인상을 받았어요. 아무래도 당일 개봉과 태풍 영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범죄도시 시리즈 말고 이렇게 관객들이 붐비는 한국영화는 이번이 처음 같았네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워낙 이병헌 배우님의 연기는 대단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보러 가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어요. 이번엔 이병헌 님이 과연 어떤 역할로 어떤 연기를 보여주실까 기대가 되었었죠. 영화를 보니 역시 명불허전이더라고요. 이번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과연 어땠는지 지금 바로 리뷰하겠습니다!
줄거리
아파트 공화국이 된 한국.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어버린 서울. 그곳엔 모든 콘크리트 건물들이 무너졌지만, 오직 '황궁 아파트'만이 온전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추위와 굶주림에 도망치듯 오는 외부 생존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심지어 입주민들에게 위협을 끼치기까지 한다. 생존을 위해 이 황궁 아파트를 사수하려는 입주민들. 그들은 새로운 주민 대표 '김영탁'(이병헌)을 중심으로 외부인을 몰아내고, 그들만의 생존 규칙을 내건다.
그들은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채 지내지만, 곧 자원이 바닥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외부세계로 나가게 된다. 그들은 황궁 수색대를 꾸려 주변 폐건물들을 수색하며, 이 과정에서 '명화'(박보영)의 남편 '김민성'(박서준)은 외부 생존자를 해치는데 일조하게 된다. 그리고 김영탁의 옆집에 살던 여학생(903호) '혜원'(박시후)이 이 황궁아파트에 들어오면서 영탁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그 튼튼했던 황궁아파트 시스템에 조금씩 내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까?
감상
콘크리트 벽으로 빚어내는 선과 색의 미학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두 가지에 놀랐던 것 같습니다. 첫째는 세상을 무슨 밭을 갈듯이 갈아엎는 거대한 규모의 대지진에, 두 번째는 사람이라곤 살 수 없을 것 같은 차가운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들의 흩뿌려짐이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요소는 이 영화의 대부분의 인상을 좌우하죠. 영화는 시종일관 잿빛 콘크리트 바닥과 벽들을 연신 비춰줍니다. 하늘은 또 겨울인지 차가운 푸른빛을 내놓지요. 이 둘이 합쳐져서 마치 외부세계는 생명이라곤 살 수 없는 각박한 인상을 주죠. 그리고 황궁 아파트 내부에서는 붉은 불빛과 따뜻한 둥그런 이불들과 옷들이 눈에 들어오죠. 마치 이곳만은 살기 좋은 천국 같은 이미지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런 도형과 색의 조화는 꾸준히 연출됩니다. 심지어는 배우들의 감정을 전달할 때에도 쓰일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죽은 상점 주인을 두고 민성이 동굴 같은 자그마한 오각형 구멍에 비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붕괴된 벽 구멍으로 바라보는 게 마치 그의 사람다운 인격이 그렇게 작아져버리고 소멸돼버리고 있다는 걸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배우들 간의 감정 전달에 있어서도 도움을 주더라고요. 수색대가 중간에 붉은 화염을 뿜는 불기둥을 보며 쉬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대표 영탁과 수색반장 민성이 서로의 생각과 추억을 주고받는 장면이 있습니다. 원래 같았으면 각박한 외부 세계의 풍경에 서로 성격을 곧두세우고 있었을 테지만, 붉고 따스한 불기둥을 보니 그들의 마음이 녹아내린 듯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둘은 서로 굉장히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고, 심지어는 영탁에게 민성이 의탁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결정적인 장면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수려한 곡선의 이미지도 있었습니다. 사건들을 겪으며 마치 좁은 병목을 지나가듯이 줄어드는 황궁 아파트 주민들 수를 저는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봤습니다. 처음에는 외부 생존자들까지 포함시키다, 주민들만 아파트에 두고, 그다음은 끝내 구석에서 생존하고 있던 외부자들을 한번 더 '방역'해버리죠. 그리고 마침내 외부 생존자들이 아파트를 차지하려는 마지막 전투에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죽어버리고 맙니다. 마치 체에 걸러나가듯이 인구가 줄어나가는 것도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잘 사는 유토피아는 이뤄질 수 없다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이게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과연 이것뿐인가요? 하고 반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깔아놓은 의도들을 최대한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솔직히 마땅히 없었어요. 아쉽지만 감독의 역량 차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체제 싸움처럼 거대한 이데올로기로 이야기를 몰고 간 건 아닌 것 같고요, 그렇다고 해서 황궁 아파트라는 작은 '유토피아'에 한정지어서 이야기를 전개한 것 역시 아닌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주제는 위기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루는 게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결국에는 따뜻한 인간성을 유지했던 명화만을 남겨두면서 마무리했기에 제가 말한 주제여야 할 겁니다.
물론 열린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장면도 존재합니다. 명화의 마지막 대사 -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는 조금 무서울수도 있는 대사라 생각합니다. 그 장면에서 박보영 배우님은 굉장히 오랫동안 생각하다 이 대사를 뱉었죠. 아마 황궁 아파트에서의 생활을 파노라마처럼 그리면서 마지막엔 자신의 남편을 떠올렸을 겁니다. 처음에는 가정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살다, 결국엔 대표 영탁의 권위에 복종해 버리고, 인간성을 잃어버린 민성을요. 그 민성이 마지막 죽기 전 밤에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말은 분명 '평범한' 한 시민, 한 남편의 모습이 맞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구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요? 과거 나치의 명령아래 복종했던 독일군이 그랬습니다. 반인륜적인 행태를 서슴없이 행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고는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죠. 그리고 그 나치군의 행동에 대해 그들의 무비판적 수용의 자세를 들며 유죄를 주장했죠.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살기 위해, 명령에 따르기 위해 그랬다고 할 테지만 그것은 곧 상대방의 처지를 묵살한 채 진행하는 살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 잔인한 그들이 결국엔 평범한 이들이었다는 대사는 100년 전의 길고 거대하고 잔인했던 전투와 그녀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프레임 씌우기
감독은 주민들에게 유토피아로 여겨지는 황궁 아파트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전개해 나갑니다. 그래서 철저히 외부 세계의 이야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두 세계의 대립을 아주 명확하게 이끌어냅니다.
이것은 영화 대사 속에서도 드러나요. 주민들은 외부 세계 생존자들을 '바퀴벌레'라고 칭하면서 숨어 지내는 바퀴벌레들을 색출하는 작업을 하죠. 이것을 '방역'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꽤나 압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외부 세계도 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주민들의 호사스러운 삶과 시끌벅적한 소리를 미끼로 생존자들을 꾀어내어 먹어치워 버린다는 '식인종'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뭔가 서로 굉장히 어긋난 느낌이죠? 그들은 실제로 바퀴벌레가 된 적도, 식인종이 된 적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서로가 편견을 갖고 서로를 바라봤죠. 그리고 결국 영화 클라이맥스에 다다라서 서로가 바퀴벌레가 되어버리고, 식인종이 된 것 마냥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치닫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프레임 논리는 한 세계의 내부에서도 진행됩니다. 남편 민성과 아내 명화의 갈등이 대표적이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민성은 밖은 지옥 같다는 말을 하지만, 명화는 그런 와중에 밖에도 사람이 산다는 말로 함께 살아갈 것을 내세우죠. 또한, 대표 영탁은 옆집 903호가 등장한 신을 기점으로 진정한 권력자의 모습을 변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권력에 순응하는 존재인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민성과, 그렇지 못하고 폭발하고 외부 세계와 연대한 주민이 있었죠. 이 영화는 끊임없이 두 대립항을 만들어내고, 결국엔 두 세계의 합치를 이뤄내지 못해 파국으로 치닫는 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지연된 법의 세계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밌는 점이라고 하면, 무법과 법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지진이 일어나고 나서는, 세상이 무법지대가 되어버립니다. 생존을 위해서 사람들을 도둑질하고, 살인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지죠. 아이러니하게도,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끔찍이도 법의 힘을 다시 주장합니다.
애초에 아파트 주민들이 자신의 집이 자신의 것임을 증명하는 것은 집문서라고 했죠? 그런데, 이것은 사실 이젠 종이쪼가리에 불과합니다. 법이 의미가 없어지고 화폐마저도 쓸모없어진 마당에 집문서라뇨! 그러나 주민들은 이 집문서와 그것이 타고 있던 법의 존재를 들먹이며 자신의 것임을 주장합니다. 이것은 다른 아파트와도 비교되었던, 조금은 빈한 것이었던 그들의 과거의 아픔과 시너지를 내죠. 게다가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하나같이 조금씩 소시민적인 이미지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대출을 엄청 받아 마련한 주인공 부부와, 노파와 살고 있던 902호의 진짜 주인이 그 예시죠. 그런 그들은 어쩌면 과거부터 조금은 '힘'이 약하고 비교되었던 대상들이었기 때문에, 다시 지켜줄 존재로 '법'을 다시 끌고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뻔하지 않은 세계관을 이렇게 뻔한 스토리로 풀어낸 점은 너무 안타깝습니다. 초반에는 정말 세계관을 잘 구축하고 마음에 드는 역작이 나오나 했는데, 중반부부터 스토리 확 쳐지더라고요. 세계관을 좀 더 발전시키거나, 의미심장한 결말로 내디뎠으면 훨씬 멋진 작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독이 기댈만한 요소는 명배우들의 연기였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주요 배우들은 연기를 정말 잘해줬어요. 근데, 그래서 너무 아쉽습니다. 거대한 세계관을 막 운용하다가 자그마한 몇 명의 인물들로 갑작스럽게 축소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병헌 배우님의 미친 연기력은 너무나 좋았지만, 그것을 잘 이용하지도 못했을뿐더러, 나중에 가서는 억지스러움 마저도 들었습니다. 갑작스럽게 903호는 왜 던지는 걸까요;; 분노 가득한 연기가 가짜 김영탁을 완벽히 연기는 했을지라도, 그게 이 영화의 세계관과 과연 최적의 인물이었냐는 의문입니다.
오늘 본 제 영화광 친구도 그런 말을 했네요. 설국열차와 기생충을 섞은 느낌이라고. 그런데 오히려 그 급에는 미치지 못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역시도 이 영화가 재난영화계에 기생충이 되었나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아쉽습니다. 막대한 제적비가 들어간 '텐트폴 영화'라고 여겨지던데, 개인적으로는 그 돈을 거두기는 조금 힘든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나 암울한 주제를 다뤘고 상업 영화의 결과는 먼 것 같습니다. 입을 벌리면서 재밌게 보긴 했지만, 다시 볼만한 영화는 되지 않을 듯합니다.
2023 8 9
학익 CGV
참고자료
포스터 사진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포토 : 네이버 통합검색 (naver.com)
네이버 영화 정보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정보 : 네이버 통합검색 (naver.com)
캡처 사진 출처 : [콘크리트 유토피아] 메인 예고편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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