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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상자/글

면허에 대한 고찰 - 버스편

오늘도 전주에서 광명역으로 막 KTX타고 올라왔습니다.
기차가 조금 연착된 탓인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광명역에서 버스탈때 보는 광경


버스를 타려는데, 오늘따라 NFC가 태그에 안 먹히더군요.
늘 되던 게 안되니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옆으로 비킨 채 뒤에 기다리시는 분들 먼저 타게 해드렸습니다. 이 때 저는 짐 꾸러미들을 오른쪽 조수석에 두고 지갑을 찾았어요. 그리고 지갑속에 버스카드를 꺼내 대금을 치뤘습니다. 탈때 특이했던 점은 꽤 젊은 안경쓰신 남성분이 운전석에 계시더라구요. 그것말고는 평소와 같았던 버스였습니다.

그렇게 한시름 놓고 나서 차안에서 정신을 놓으려고 하던 찰나, 저는 조금 충격적인 광경을 보았어요. 버스운전수분께서 간헐적으로 고개를 떨구시는 것 아니겠어요? 스마트폰을 떨궈진 제 시선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급작스럽게 고개가 움직이셨어요. 제일 먼저든 생각은 역시 졸음운전이었죠. 게다가 지금 고속도로도 탔는데 사고라도 나면 어쩔까 너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때 저는 조금씩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어요. 버스는 운전수 분께서 고개를 움직이는 것과 관계없이 차선과 나란히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잘 보니 고개를 꺾으시는 방향이 아래랑 오른쪽이더군요. 아, 틱 장애를 갖고 계시는구나! 그러고 나니 이 상황이 모두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 중학교 시절 틱 장애를 앓던 친구를 떠올리면서, 저는 이 분이 이 버스를 몰기까지의 여정을 그려보았어요. 아마 남들보다 더 확실한 '증명'을 요구받았을 겁니다. 젊은 나이와 건강상의 문제, 이 두 편견을 무너뜨릴 수 있어야 했었겠죠.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경유에는 '면허'라는 시스템을 알고 있어야 겠죠.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자격은 '면허'라는 이름을 붙여 조금더 특별하게 관리합니다. 우리가 흔히 '운전면허'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죠. 대개 일상적으로 면허라는 말을 남발하지만, 그 배경에는 사람의 목숨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버스를 모는 운전수는 하루에 몇백명의 시민들을 태우고 다니죠. 만일에 사고라도 나면, 타고 있는 승객 몇십명은 모두 생명에 지장을 받게 됩니다.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버스 운전면허는 일반 면허와 달리 더 따기 어려울 뿐더러, 따더라도 버스 회사에 취직한다는 또 다른 관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연중에 버스에 올라타면서 운전수를 쓱 보게 됩니다. 기왕이면 연륜이 느껴지고 남자여야 경험많은 운전수로 '판단'하고 안심하며 타게 되죠. 만일 운전석에 여성이 앉아있거나, 젊은 남성이 있으면 왠지 모를 생각이 들겁니다. 처음에 탔던 저처럼 말이죠. "저 얇은 팔뚝으로 이 커다란 차를 몰수 있을까?", "이 차 몰아본 경험이 충분할까?"하는 생각이 안 날 수야 없습니다. 우리가 탔었던 버스의 대부분의 운전수들이 그러했고, 예외적인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기대보단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이 편견은 세상에 수많은 직종에 브레이크를 걸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 생명을 맡기는 거 기왕이면 더 잘하는 사람, 더 경험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어하죠. 요즘 얘기가 많은 전공의 문제와도 연결지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외과 부문 전공의들은 수련과정동안 많은 수술 경험을 습득해 전문의로 거듭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과거의 전공의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전공의들의 영역은 점점 축소되었습니다. 술기를 배우기 위해 개처럼은 구르는데, 정작 배워야 할 술기는 점점 뒤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술기를 전문의가 되고 나서 전임의때 가르치는 경우가 이젠 정석입니다. 그래서 전임의 (펠로우)는 거의 반필수 코스고 이 과정 역시 전공의와 다를바가 없게 되었습니다. 박봉에 전공의급 로딩을 또 다시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터널같은 인턴과정을 겪은 전공의쌤들은 끝나지 않는 수련의 길로 가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의 미래를 짓밟는 정책은 단숨에 현장을 떠나게 만들기 충분했을 테지요.

저 버스 운전수분도 비슷한 입장이셨을 겁니다. 버스를 몰겠다는 '경험'을 얻고 싶은데, 그 경험조차도 쌓기 힘들게 만드는 세상이 야속하셨을 겁니다. 저는 부디, 힘들게 면허를 딴 이들에게 조금 더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사회가 오길 바라봅니다.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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