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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괴물] 어두운 오해의 그늘을 걷어내는 반짝이던 햇살

배경

푸른 배경에 아이 둘

안녕하세요 Zeromm입니다.

이 영화는 본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네요. 제 여동생과 함께 봤던 영화인데, 저희 둘 모두 만족하면서 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연출도 독특하고 주제가 조금 심오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처음에 봤던 이 포스터처럼, 마지막에서 두 주인공 아이들이 달려 나가는 장면은 지금에도 잊히지 않네요.

어떤 영화일지 한번 보시죠!

저 장면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줄거리

도시에 빌딩 화재 사고가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는 크게 3부로 진행된다. 아들 미나토를 홀로 키우고 있는 엄마 사오리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1부와 미나토의 담임선생을 맡고 있는 호리 선생의 시선을 담은 2부,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 미나토의 시선인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미나토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던 사오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느날처럼 무탈하게 살아가던 사오리는 빌딩 화재 현장을 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들과 함께 구경한다. 그때 아들은 사오리에게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라고 생각한 사오리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러나 그날 이후, 미나토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을 갑자기 자른다던지, 흙투성이가 된 채로 신발을 한 짝 버리고 돌아온다던지, 물통에서 흙이 나온다던지 말이다. 급기야 함께 달리던 차량에서 뛰어내리고는 자신은 '돼지 뇌'라고 소리친다. 이 상황에서 엄마 사오리는 아들에게 누가 그랬느냐고 묻고, 아들은 자신의 담임 선생님 '호리 선생'을 내뱉는다.

그날 이후 사오리는 호리 선생과 학교 측에 진상을 묻기 위해 학교에 찾아간다. 그러나, 학교 측은 호리 선생을 아무 말 내뱉지 못하도록 강제해버리고는 부자연스럽고 상투적인 사과말만 반복한다. 찜찜한 일들을 연속해서 접하고 있는 사오리, 그녀는 호리 선생이 가까스로 내뱉은 말들 중 미나토가 동급생인 요리를 괴롭힌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요리네에 찾아간다. 요리는 특별한 이상 없이 호자서 미나토의 엄마를 맞이한다. 그러면서 사오리를 위해 편지를 써주겠다는 요리. 그러나 글자좌우 뒤집어쓰는 이상한 필체를 쓰는 것을 목격한 사오리는 요리에게 잘못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자 정색하는 요리. 과연 요리는 어떤 아이일까?

 

총평

재난을 바라보는 3가지의 시선을 그려낸 독특한 연출

앞서 줄거리에서 설명드렸듯이, 이 영화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선에 따라 구성을 달리한 건 마치 현대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떠올리게 하네요. 이런 구성의 특징은 작품을 관통하는 커다란 사건이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각 시선들이 주제가 됩니다. 난쏘공에서는 난쟁이인 아버지가 자살하는 사건이 되겠고, 이 영화에서는 두 번의 재난이 그것이 됩니다.

영화의 각 부의 첫 시작은 붉게 타오르는 빌딩을 보여주면서 입니다. 1부에선 사오리가 아들과 함께 멀리서 바라보고, 2부에선 호리 선생과 그의 연인이 외출 중에 보는 것으로 나오죠. 이때 호리선생은 화재 현장, 특히 걸스 바 건물 근처에서 여자와 함께 걷고 있었기 때문에 훗날 사오리에게 유흥업소에 다니는 한심한 선생이라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아무튼 이 화재 사건이 일어나면서 모든 서사가 시작됩니다. 영화는 처음 이 화재가 그저 사건임을 내비치지만, 나중에 가서는 이 사건이 방화일지도 모른다는 구체성이 더해집니다. 이 영화의 주제와 같죠. 3부 구성을 통해 재난 현장에서 각 인물들의 시선을 그려냅니다. 1부와 2부에서는 조금은 뭉뚱그려진 묘사도 마지막 진주인공인 미나토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3부에선 모든 게 구체화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재난인 태풍과 호우가 작중 인물들을 휩쓸고 나갔을 때. 비로소 두 주인공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3부 구성을 채택한 것이 정말 괄목할만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이 3부 구성이 1부에선 너무 미스테리하고 납득하기 힘든 요소들을 마구 낳습니다. 그래서 긴장과 찝찝함 속에서 숨 죽인 채 두 번째 재난을 맞이하게 돼요. 이때는 무슨 공포영화 같습니다. 당연히 아들 미나토를 모나게 자라지 않게 '선'을 지키며 상식선에서 살아온 엄마 사오리 눈에선 그렇게만 보일 겁니다. 관객들은 사오리 시선을 통해서는 미나토를 비롯한 이 영화 전반이 정말 '괴물'같은 기이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2부에 들어가서는 조금 구체화해서 호리 선생의 시선에선 학교에서 쫓겨나게 만든 요리가 마치 '괴물'처럼 느껴지겠죠. 아니, 호리 선생을 못살게 구는 사오리와 학교 관계자들 모두가 가해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3부에 이르러서는 이 모든 사건들이 그저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시작했음을 관객들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화재가 그냥 화재가 아니였던 것.. 괜히 대단한 영화가 아니다.

오해는 또다른 오해를

이번엔 진주인공인 미나토와 요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사실 이 영화의 모든 발단은 요리에게서 시작된다고 무방합니다. 요리는 조금 남들과 다른 남자아입니다.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지나치게 명량하고, 여자아이들과 더 잘 지내죠. 그 때문에 남자아이들 사이에선 남자를 좋아하냐고 놀림을 받습니다. 실제로 BL서적을 읽기도 하고, 같은 남자아이인 미나토에게 플러팅(?)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성향이 그런 것 같아 보이죠. 그 때문에 요리는 타고난 자신의 성향을 아버지에게 철저히 개조당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을 정도로 요리는 당당하죠.

영화에서 나오는 돼지뇌 비유는 바로 요리의 아버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남자를 좋아하는 요리를 두고, 요리의 머리는 돼지뇌가 들어있기에, 사람이 아니라 개조의 대상임을 호리 선생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호리는 여기서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그저 미나토가 문제 있는 아이로 보았는데, 실상은 요리에게 더 큰 발단이 있었음을 깨닫고 미나토에게 사과하러 가기도 하죠. 결국 피해자로 그려졌던 2부 주인공 호리마저도 누군가에겐 오해와 편견으로써 가해자가 되어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나토는 어떤 아이일까요? 미나토는 사춘기에 막 입문하는 정석적인 남자 아이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비판의식을 겸비하기 시작하죠. 처음엔 요리가 남자아이들에게 조롱받는 것이 참을 수가 없어서, 그저 불의에 견디지 못한 한 정의로운 소년으로 요리를 도와줍니다. 그러나 요리는 이것을 플러팅으로 받아버리고는 더 큰 플러팅으로 되갚아주죠. 여기서 동성 아이가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한다는 게 너무 식겁해서 다가오는 요리를 밀어내버립니다. 그런데 너무 착한 나머지 그것마저도 미안해서 따로 요리에게 찾아가 친해지게 되죠.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는 상황 속에서 여러 번 요리는 동성 친구의 선을 넘는 행위를 보이고, 그때마다 미나토는 자신도 모르게 요리를 밀어내면서 혼란을 겪습니다. 그가 머리를 자르고, 돼지 뇌에 대해서 사오리에게 묻고, 흙을 마구 묻혀오는 것도 모두 혼란 속에서 빚어내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 미나토는 깊게 사오리에게 말하지 않았고, 결국 오해는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켜 모두가 태풍과 비바람이 치는 날로 향하게 됩니다.

얼굴에 진흙을 묻힌 게 흙바닥에 뒹구는 돼지같은 인상을 주면서도 그 나이에 맞는 이미지를 주는 듯 참 오묘하다

오해의 태풍을 지나 찬란한 빛줄기 아래로

갈등이 극에 달할 때쯤, 요리와 미나토는 자신들의 비밀 아지트에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사오리와 호리는 아이들을 찾아 다닙니다. 그러다 2부 마지막에서 그들의 아지트 근처까지 접근하고는 창문 비슷한 것을 열면서 끝나죠. (아래의 두 번째 사진) 이때 이들이 무엇을 봤는지는 몰라요. 사실 아지트에 있는 요리와 미나토지만, 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분명치는 않거든요. 그렇지만, 모든 태풍이 지나고 난 뒤, 그늘이 걷히고 햇빛이 내리쬐는 풀숲을 달려 나가는 두 아이의 모습에서 만족스러운 해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죽어서 다시 태어났'으면 했어요. 다시 태어났을 땐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있길 바라면서.

 

영화가 되게 어려운 편이라 초반에 의도적으로 집중하면서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따로 안경도 안 챙겨가서 배우들 표정이 잘 안보였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커요. 영화 흐름 따라가랴, 흐릿한 배우들 얼굴 찡그리며보느라 아주 피곤했습니다. 아이들 얼굴이 정말 맑고 예쁜데, 이것을 명확한 눈으로 보지 못했다는 게 영화관을 나오면서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여기에는 담지 않았지만, 학교 관계자 측에서 중년 여성이 교장 선생으로 나옵니다. 그녀는 사오리에게 시종일관 사무적인 말과 이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줍니다. 게다가 그녀가 사랑하던 손녀가 가족의 차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나오죠. 그래서 표정이 저렇게 부자연스러운가 싶었는데, 나중가서는 입체적으로 바뀝니다. 특히, 태풍이 몰아치는 순간에 커다란 굉음이 상영관을 감쌉니다. 출처 미상의 굉음 때문에 1부 마무리가 더욱 공포스러운 것도 한몫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교장이 미나토에게 트럼펫을 건네고 함께 부는 소리였던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이 영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치라 생각했어요. 실체를 알지 못한 채 오해하고, 공포스럽게 여겼던 대상이 실제로는 사연이 있고, 멋진 것들이었던 것이죠. 이들이 부는 트럼펫소리는 영화가 미스터리에서 드라마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는, 정말 대단한 장면이라고 꼽고 싶습니다.

참고자료

[괴물] 메인 예고편 전격 공개! 11월 29일 대개봉 (youtube.com)


2023년 12월 31일 오후 1시
인천CGV